“엄마, 생일에 친구들 저녁에 불러도 돼?”
“그럼, 당연하지. 몇 명이나 오는데? 엄마가 뭐 준비해 줄까?”
“아니, 엄마는 안 해도 돼. 스시 플래터 시키고, 풍선이랑 장식도 준비하고, 디저트는 내가 잔뜩 만들 거야.
단 거 엄청 많이 먹을 거야!”
“그래, 알았어. 엄마는 청소 깨끗이 해 주고 아래층에 있을게.”
“할머니가 잡채 해 주신다는데 괜찮아?”
“어, 괜찮지. 다 같이 먹자.”
어제 저녁, 딸아이와 함께 점보 사이즈의 숫자 풍선 두 개를 불며 나눈 대화다.
하나는 딸이, 하나는 내가 불었다. 22라는 숫자가 공기 속에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걸 보며, 나는 문득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는지를 새삼 느꼈다.
생각만 해도 풋풋한 20대, 그리고 그 시작선 22살.
딸아이는 이제 곧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 인생의 아름다운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다.
오늘 지인이 “아이들은 잘 크고 있지?”고 물어왔다. 대답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참 바르고 예쁘게 자라 주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마음이 뭉클해지며 감사가 밀려왔다.
딸은 친구들과는 유쾌하고 달달한 생일 파티를, 가족과는 조용한 생일을 원했다.
“그럼 아빠, 엄마, 언니는 네게 어떻게 해 주면 좋겠어?”
"내가 하이티 예약해 놨는데 엄마 괜찮아?"
"응? 하이티가 뭐야?"
"올해 생일은 우리 가족과 함께 하이티 카페에 가서 하고 싶어서..."
"좋지!! 아빠 엄마는 무조건 콜!"
며칠 전, 우리 가족이 함께 갔던 잉글리시 하이티 카페가 떠올랐다.
100년이 넘은 앤틱 건물 안에서 처음 경험하는 하이티 앞에서 남편과 나는 조금 어색했지만, 딸들은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큰딸이 미리 메뉴를 정해놓고 “엄마, 아빠는 롱블랙 드시죠?”라고 묻던 모습이 어른스러워 보였다.
남편과 나는 롱블랙을, 큰딸은 진저티를, 작은딸은 라떼를 시켰다. 카페 곳곳에는 ‘1930’이라 적힌 그림들과 도자기 같은 티 세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연세 지긋한 분들이었는데, 뜨개질과 LP 수집을 좋아하는 22살 딸의 취향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3단 플레이트가 나오자 나는 “어머, 정말 예쁘다!” 하고 감탄했고, 딸들은 그런 엄마를 보고 빙긋 웃었다. 아랫단에는 샌드위치, 중간에는 다양한 맛의 스콘, 꼭대기에는 초콜릿과 꽃으로 장식된 달콤한 디저트가 예술 작품처럼 올려져 있었다. 아이들을 통해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의 22살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군 복무 시절을, 나는 취업과 학업으로 분주했던 시절을,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평소엔 바쁘게 지내던 자매였지만, 이날만큼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고, 언니가 동생의 취향을 살려 선물을 골라주는 모습이 엄마로서 참 뭉클했다.
22라는 숫자 풍선을 불며, 나는 앞으로 이 아이가 걸어갈 길들을 그려본다. 환자를 돌보며 성장하는 모습, 언젠가 자신만의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까지.
시간은 참 빠르다. 하지만 이렇게 풍선을 불고, 하이티를 즐기고, 생일을 준비하는 순간들이 있어 행복하다.
22살, 새로운 시작 앞에 선 딸아이에게 엄마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아마도 이런 따뜻한 일상의 순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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